책을 읽다/단편소설

(38)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 _김병운

우아한책장 2022. 7. 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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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젊은잚가 수상작

 

1. 작가소개 : 김병운

 

1986년서울출생. 연세대학교국어국문학과를졸업했다. 2014년작가세계신인상에단편소설「메르쿠」가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 에세이집『아무튼, 방콕』, 장편소설첫장편소설 『아는사람만아는배우공상표의필모그래피』있다.

“제눈에비친지금우리사회는끝내자기자신을미워하게만드는, 어떻게가더라도결국나를파괴하는길로접어들게만드는사회입니다. 때문에저는여전히소설이할수있고해야만하는어떤것이있다고믿습니다.

 
2. 줄거리
 

성애자인 ‘윤범’이 무성애자인 ‘주호’에게 무지로 인한 폭력을 가했다는 것을 깨닫고 성장하는 과정을 그렸다. 성적소수자 독서토론회에서 만난 윤범과 주호는 주호의 초대로 오랜만에 만나게 된다. 주호가 잠시 외출한 사이 윤범은 그의 여자친구 인주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가 과거 주호에게 했던 행동과 그에게 남겼을 ‘상처’를 자각하게 된다.

 

3. 감상평

 

나는 작가가 나, 우리, 너 너희. 인칭대명사를 통해서 우리는 그룹에 속한 사람과 속하지 않은 사람을 끊임없이 구분 짓는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가 ‘우리가 아닌 타인’에 대해서 얼마나 무감각한지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이는 성적소수자인 윤범이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된 소설을 집필하며 아무렇지 않게 다른 ‘소수자(무성애자)’들에 대한 무지한 모습을 보이는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차라리 무성애자였으면 좋겠어. 아무 감정도 못 느꼈으면 좋겠고 누구도 사랑할 수 없으면 좋겠어” P133

 

그는 주호가 가진 정체성에 대해 폄하하는 생각한다.

 

“나는 정체성이라는 게 필요하면 장착했다 실증나면 벗어버리는 게임 아이템 같은 건가 싶어 헛웃음이 나왔고, 도대체 어떻게 성적인 끌림을 느낄 수 없다는 건지, 아니 그럴 수 있대도 그건 정체성 이라기보다는 일정 기간의 상태가 아닌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인주가 말했던 것처럼 발코니, 테라스, 베란다를 우리가 잘 모른다는 이유 혹은 구분 지을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한다는 이유로 ‘퉁쳐서’ 취급해도 될까? 작가는 이런 그들의 섬세한 개별성에 대해 깨닫고 이해하길 바란다고 생각했다.

 

짐짓 성적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고 보여질 수 있지만 '우리'가 아닌 다른 '그들'에 대한 무지와 자기중심성을 돌아보는 '우리모두'의 이야기로도 들리기도 한다. 

 

 

4. 문장수집

 

하지만  그날에 대해 쓸 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내 한계를 확인하고는 지운다. 어느 날은 내가 너무 투박한 나머지 우리를 흐릿하게 뭉개놨다는 판단에 지우고, 어느 날은 내가 너무 성급한 나머지 우리를 매끄럽게 정리해버린 것 같다는 생각에 지우며, 또 어느날은 내가 쓴 것들이 모두 궁색한 자기 변명 같다는 느낌에 지운다. 그리고 그렇게 지우고 또 지우다보면 어김없이 어떤 대사를 마주한다. 끝내 지우지 못하는, 아니 모조리 지워도 속절 없이 다시 쓰게 되는 그 대사를. p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