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단편소설

(36)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_ 윤이형

우아한책장 2021. 2. 8.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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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가소개: 윤이형

 

본명은 이슬. 1976년 서울 출생. 소설가 이제하의 외동딸이다.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2005년 중앙신인문학상에 단편소설 검은 불가사리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등단 이후 단편소설 피의 일요일(2006), 셋을 위한 왈츠(2006) 등을 발표하면서 현실과 가상, 꿈과 현실의 경계를 뛰어넘는 특유의 문학세계로 주목받았다.

 

2. 등장인물

 

 - 희은: 결혼 전 번역가 일을 하다 남편 정민을 만남. 중학교 때 아버지가 집을 나간 뒤 온전한 가정형태를 겪지 못한 채 유년 시절 보냄. 결혼 제도 자체에는 거부감을 느끼지만, 가족과 아이에 대해 욕망하고, 스스로 제대로 된 부모가 되고 싶어 정민과 결혼함.

- 정민: 청교도적이고 성실한 가족의 사랑으로 인해 질려버린 상태. 희은과 사이에 생긴 아이를 위해 본인의 자유를 포기하기로 함. 이혼 당시까지만 해도 가족의 제도에서 벗어나지 못해 희은을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던 인물.

- 초록: 희은과 정민의 아이. 부모의 지극정성으로 밝고 온전하게 성장 중

- 치커리: 희은이 시장에서 3개월 때 데려온 첫 번째 고양이. 7년 전 급성신부전으로 사망. 시니컬한 성격으로 여중생이 아저씨 대하듯 나이 많은 순무를 등한시함.

- 순무: 5살에 탁묘로 돌보다 입양하게 된 두 번째 고양이. 21살에 복막염으로 사망. 순하고 무른 성격. 여중생을 좆는 아저씨처럼 치커리를 따라다님.

 

3.  문장수집

 

더 뭉툭하고, 둥그렇고, 차분한 슬픔이 마음속에서 천천히 커져갔다

 

이토록 끔찍한 악의들로 가득 찬 세상에도 실은 그것이 당장 형체없이 무너져 내리지는 않게 떠받치는 젓가락처럼 가느다란 의지들이 있음을, 그러므로 그것을 알게 된 이상 자신은 다른 누군가를 탓할 권리를 영원히 빼앗겼음을 깨달았다.

 

그의 세계는 공간이 아니라 시간을 통해 확장되었다 오롯이 혼자일 수있는 시간, 가까운 거리를 느리게 산책하며 보잘것없는 풍경들을 깊이 들여다보는 일,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예술 작품들, 독서와 상상이면 충분했다. 모두 결혼 생활이 정민에게서 빼앗아간, 이제야 조금씩 되돌아오기 시작한 것들이었다.

 

가난을 향해 욕을 하며 따귀를 후려치거나 그 반대쪽으로 달아나는 대신 그것을 소박하고 편안한 셔츠처럼 각자의 몸에 걸치고 다녔다.

 

삶 자체, 일상 자체, 생활이라는 거대한 턱 자체가 그들의 입에 넣고 단번에 머리와 몸, 사지로 토막 내 바닥에 함께 뱉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세상의 어디선가 일어나지만 왜 일어나는지는 알 수 없는 일.

 

죽음이 희은 안에 있던 것들을 무서운 기세로 태워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