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단편소설

(26) 공포가 우리를 지킨다 _이승은

우아한책장 2021. 1. 28.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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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가소개: 이승은

 

1980년 서울 출생. 2014년 단편소설 소파세련되고도 정제된 방식의 개성적인 울림을 만들어낸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음 문예중앙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 20194월에 소설집 오늘 밤에 어울리는출간. 등단한 이래 기묘하고 새롭다는 평을 받아온 젊은 작가.

 

2. 줄거리

 

일 년 전 제시를 입양 보낸 지영의 가족과 우연히 마주친 영진과 윤주는 예기치 않게 그들의 집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몰라보게 변한 제시를 발견하고 충격을 받는다. 제시의 상태에 대해 얘기하던 중 언성이 높아지고 제시를 도로 데려가기 위해 철망 안에 들어간 영진이 피를 흘리며 돌아온다. 집으로 가려던 영진과 윤주는 차 키가 없어졌음을 깨닫고 현우가 아이들을 추궁하면서 집은 소란한 가운데 미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3. 분석

 

1) 불안한 관계

한이사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도 일 년 전 지영에게 제시를 떠넘기듯 보내버렸다는 생각과 제시가 아프다는 연락에 답을 잘 하지 못한 일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윤주와 영진은 어딘지 모르게 빚진 마음으로 지영의 가족을 대한다. 영진은 지갑에서 돈을 꺼내 유민과 유석에게 주려고 하지만 현우가 거절한다.

 

2) 침몰 중인 현재

 

외진 골목에 위치한 집은 주변보다 지대가 낮고 수리한 흔적 없이 방치된 듯한 모습이다. 찢겨져 나간 벽지 뒤로 드러난 누런 벽지와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빛바랜 플라스틱 의자, 찢어진 우산 그리고 망가진 구식 전화기는 집의 황폐한 풍경을 비추면서 가족의 침몰해가는 현재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유민이 가져온 과거 사진 속 풍경(풍성하고 생기 있는)과 대조를 이루고 이사 온 뒤부터 일이 잘 풀린다는 지영의 말과도 대비된다.

 

3) 제시를 통해 가시화되는 불행

 

뒤뜰에 방치된 상태로 목줄에 메여 있는 제시를 보고 영진과 윤주 모두 충격을 받지만 윤주는 유독 달라진 제시를 불편해하고 제시가 짖을 때마다 불안해한다. 올봄에 두 사람은 회사를 정리해야 했고 같은 시기에 예민해지고 사나워진 제시는 철망 우리 안으로 보내진다. 윤주와 영진이 법적으로 남남이 된 삼 개월 전부터 제시는 같은 자리를 빙빙 돌거나 때때로 맹견처럼 난폭해졌다. 두 사람의 불운과 맥을 같이 하는 제시를 통해 윤주는 자신들에게 닥칠 불행의 징조를 느낀다. 늙고 병들어 (냄새가 나고 눈에 초점이 없고 귀는 축 처지고 힘없이 푸석한 털)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옹졸해진 제시의 모습은 영진과 윤주의 미래처럼 그려지며 이는 결말부에 영진이 겁에 질린 나이든 남자처럼 보였다는 것과 개 한 마리를 키우는 노부부가 된 자신과 그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는 서술로 암시된다.

 

바로 잡을 수 없다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같은 자리에서 맴돌 수는 없다고윤주는 생각했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서 나아가고 있었지만 현실은 임시로 세운 철망 안에서 목줄을 맨 채 제자리를 빙글빙글 도는 제시와 돌 사이를 건너가다 바다에 빠져버린 유석처럼 불행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허우적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 데칼코마니처럼 닮아있는 두 가족

 

골칫거리였던 제시를 지영에게 떠넘기듯 처리한 뒤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지냈던 윤주와 영진은 갓길에 위태롭게 서있는 지영과 아이들에게 차량을 제공한다. 도착한 집 안팎에 펼쳐진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바라보며 무심하게 그러나 판단하듯 가족에 대해 한 마디씩 주고받는다. 애들 아빠는 무슨 일을 했었대?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가 급히 집을 구했대

 

이러한 형세는 유석이 영진의 키를 보고 아빠 키랑 똑같다고 말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뒤바뀐다. 제시에 관해 윤주와 영진이 알고 있던 사실들은 현우와 지영에 의해 묵살되고 박실장에게 들었던 지영의 가족사를 곱씹었던 윤주는 이혼에 대해 노골적으로 묻는 지영을 통해 같은 방식으로 자신들의 사연 또한 흘러들어갔음을 알게 된다.

 

두 부부는 어떻게 해도 바로 잡을 수 없는 오해를 서로 나눠가졌다. 윤주와 영진은 제시가 아이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길 바랐던 마음과 제시의 나이를 속이거나 숨길 생각이 없었던 점이 그랬고 지영과 현우는 자몽청을 흘린 유석의 셔츠 앞주머니에서 떨어진 영진의 차 키가 그 경우였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버려 상대방으로 하여금 불신을 갖게 만드는 오해들. 우리한테 왜 이러는 거예요? 당신들 도대체 누구예요? 우리한테 원하는 게 뭐예요? 무슨 짓을 꾸미는 거예요?

 

5) 애초부터 반창고나 거즈는 없었을지도

 

덮어두고 외면했던 불행의 그림자가 영진의 상처처럼 부풀어 오르다 마침내 붉은 속살을 드러내고 두 가족은 삶이 봉합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음을 깨닫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지난 일 년, 아니 그 이전으로 돌아가 다른 결정으로 내리고 싶었다.

 

그렇게 무너지기 직전의 삶을 가까스로 버티고 선 인물들은 자신을 불행의 늪으로 몰아넣은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유석이 무사하기만 하다면 모두를 용서하겠다고 맹세했다.

 

6) 제시에서 전원주택(공간)으로 확장

 

윤주는 아늑하고 쾌적한 아파트의 포근한 침실로 돌아가고 싶지만 이젠 그 공간으로도, 일이 꼬이기 이전으로도 돌아가지 못하고 영진과 귀신이 나오는 전원주택에 주인 없이 갇히고 만다. 귀신 얘기에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던 유석처럼 전화벨이 울리자 영진은 입술에 손을 가져다 대며 쉿! 하고 외친다. 언제 빠져나갈지 알 수 없는 누추한 인생(전원주택)에서 불행에 응답하듯 영진은 수화기를 향해 손을 뻗고 윤주는 비명을 내지른다.

 

4. 토론

 

- 제목 공포가 우리를 지킨다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지

- 한 쪽 다리를 저는 제시와 신랑의 성격이 불같다는 지영의 말, 유석을 계속 쥐어박는 유민에게서 현우의 폭력적 성향을 - 엿볼 수 있다. 이런 현우의 성격이 작품에서 기능하는 면은?

- 작품 전반에 비관적 세계관이 짙게 깔려있고 건조한 문체, 점점 차오르는 불안한 분위기가 이를 효과적으로 뒷받침 한다. 그러나 플롯이나 이야기 자체는 새롭다기 보단 익숙한 편에 속하는데 그럼에도 이 작품만이 가지는 장점이 있다면?

- 소설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나 감정의 종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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