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단편소설

(18) 오프닝 건너뛰기_은모든

우아한책장 2021. 1. 2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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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가소개: 은모든

 

2018년 「한국경제」 신춘문예로 데뷔하였고 지은책으로는  『애주가의 결심』 『꿈은, 미니멀리즘』 『안락』 『마냥, 슬슬』 『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해』가 있다.

 

2. 줄거리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삶을 추구하는 수미는 충동적이면서 소심한 경호와 함께 살면서부터 번번히 골머리를 앓는다. 마냥 철부지 같은 그의 모습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수미. 반면에 자신에게 제 2의 먹거리를 알려준 명주 언니를 깊이 따르며 그녀와 강원도로 여행을 떠난다.

 

3. 인물

 

- 수미: 돈에 절절 매는 부모 밑에서 자라 경제관념이 철저하다. 매사에 낭비가 없고 자신이 전공한 분야가 전망이 없자 다른 분야를 새롭게 배워 제2의 길을 개척할 정도로 현실적인 마인드를 가졌다

 

- 경호: 대학 때부터 순수미술만을 고집하며 미술학원과 문화센터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전염병이 돌며 수강생이 줄자 수업이 줄어 들고 임금 체불마저 겪게 된다. 난감한 상황을 최대한 피하려 하며 밀린 월급에 대해선 한미디도 하지 못하는 소심한 보이지만 수입과 상관 없이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은 꾸준해 소비는 줄지 않는다.

 

- 명주: 수미의 전 직장 동료이자 모르는 게 없는 절친한 지인이다. 수미가 필요로 하는 것을 물으면 바로 연결이 가능할 만큼 네트워크도 정보도 아는 게 많다. 그만큼 한 우물이 아닌 열 곳으로 발을 뻗고 있다. 서른 중반에 웹 디자인을 새롭게 배워 커리어를 다시 시작할 만큼 용기 있고 현실적이다.

 

4. 감상

 

a. 어디서든 한번쯤 마주했을 것 같은 익숙한 인물과 공간들.  누군가의 삶의 한 단면을 엿본 것 같았다. 결혼에 완전히 만족하진 못하지만 대안을 찾지 못하는 수미는 현실감이 부족한 남편과의 갈등을 예감하면서도 일상을 이어나간다. 불화하고 극복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이러한 차이들이 만들어내는 '간극'을 두려워 하지만 한편으로 적응해 나가게 된다.

 

장작불이 계획대로 타오르지 않고 매캐한 연기만을 내뿜다 내부에 공기를 머금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부채질을 하자 비로소 붉은 불꽃이 기세좋게 타오르는 것처럼 관계도 '시간'이 필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의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며 가만히 귀를 기울이자 뭔가가 하염없이 끓어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영영 사라져버리는 것 같기도 한 소리가 났다. "는 마지막 문장에서 앞으로 펼쳐질 관계에 대한 작가의 관점이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이런 화합의 순간은 하염없이 끓어오르는 분노와 체념으로부터 온 것이 아닐까?

 

b. 오프닝 건너뛰기는 너와 내가 가진 간극이라고 생각했다. 누구에게 당연한 것은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것.

 

 

5. 문장수집

당장 무엇이든 새로 시작해볼 수 있을 것 같았고, P와도 얼마든지 헤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기분이 든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앓느니 죽지, 하는 마음으로 하나씩 자청해서 포기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면 돌이킬 수 없는 데까지 가는 것이 결혼 생활이라고, 그 점을 마음에 새기라고 강조했다.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는 데 성공하고, 처음으로 해외 여행을 떠나고, 첫사랑에 빠지는 강렬한 순간들이 기억의 사이사이에 기둥처럼 솟아올라 구획을 만드는데, 처음 접하는 자극이 드물어지고 빤한 일상만 반복하다보면 기 시가이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되어서 점점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는 것이었다.
적당한 틈을 사이에 두고 포개진 나무가 타고 있었다. 생애 처음으로 직접 피워올린 모닥불이었다.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며 가만히 귀를 기울이자 뭔가 하염없이 끓어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영영 사라져버리는 것 같기도 한 소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