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단편소설

(16) 실버들 천만사 _ 권여선

우아한책장 2021. 1. 11.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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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창작과 비평 여름

 

1. 작가소개: 권여선

 

1965년 경북 안동 출생.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인하대 대학원에서 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6년 장편소설 『푸르른 틈새』로 제2회 상상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솔직하고 거침없는 목소리로 자신의 상처와 일상의 균열을 해부하는 개성있는 작품세계로 주목받고 있다. 2007년 오영수문학상을 수상했다. 2008년도 제32회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사랑을 믿다'는 남녀의 사랑에 대한 감정과 그 기복을 두 겹의 이야기 속에 감추어 묘사하여 호평을 얻었다.

저서로는 소설집 『처녀치마』, 『분홍 리본의 시절』, 『내 정원의 붉은 열매』, 『비자나무 숲』, 『안녕 주정뱅이』, 장편소설 『레가토』, 『토우의 집』, 『레몬』, 산문집 『오늘 뭐 먹지?』가 있다. 오영수문학상, 이상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동리문학상, 동인문학상,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다.

 

2. 줄거리

 

코로나 여파로 인해 강제 백수 상태가 된 반희는 무좀이 의심되는 발톱을 깎는 중 딸 채운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채운은 반희에게 여행을 제안한다. 가족으로부터 도망치면서 채운도 함꼐 버렸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반희. 엄마가 나를 버렸다는 배신감에 가끔은 엄마가 죽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자신도 모르게 하지만 정작 그 상황을 상상하면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지는 챙ㄴ, 이둘은 강원도 산골로 여행을 떠나면서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화해하게 된다.

 

3. 감상

 

‘실버들 천만사’는 김소월님의 시로 너무 유명한 구절이라서 해당 소설에서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 생각하며 읽게 되었다. 실버들은 오래전부터 사랑의 증표로 쓰였다고 하는데, 해당 소설에서는 둘 사이의 인연을 빗대는 의미로 사용된 것 같다.


“둘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닮음의 실이 이어져 있다면 그게 몇 천 몇만 가닥이든 끊어내고 싶었다”에서 후반 “우리 모녀 사이에 수천수만가닥의 실이 이어져 있다면 그걸 밧줄로 꼬아 서로를 더 단단히 붙들어 매자. 말라비틀어지고 질겨지고 섬뜩해지자.”로 실버들 천만사를 통해 반희와 채윤의 관계와 인연, 사랑에 대한 관점이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채윤과 반희가 ~씨라는 호칭을 부르는 행위는 서로를 ‘엄마’, 혹은 ‘딸’이라는 관계적 측면에서 타인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독립된 자아’로서의 한 인간으로 바라보며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유년의 상처와 부모에 대한 원망과 트라우마 같은 것들로 상흔을 만들지만, 사실 그들 역시 누군가의 엄마이자 아빠이기전에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나와 적절한 거리를 둠으로서 그들의 선택을 이해하고 다른 관계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소설적인 완결성이나 전개방식(과도한 대화의 열거) 등이 다소 밋밋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채윤이 미래완결형으로 어머니를 바라보는 시점에서 사실 많은 공감이 들었다. 문득 어머니의 피곤한 얼굴과 주름을 볼 때 어느 순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순간이 올 것이라는 같은 먹먹한 기분에 휩싸일 때가 있어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상실의 고통을 경험한다는 것이고, 그렇기에 너무 아프지만 그럼에도 실버들천만사로 말라비틀어지고 질겨지고 섬뜩해질 때까지 그 인연을 동여매고자 하는 용기를 갖게 하는 것이라. 그 지점을 잘 포착했다는 생각에 권여선 작가의 옛스러움(?)에 더해 연륜을 잘 느낄 수 있었다.

 

실버들

 

김소월

 

실버들을 천만사

늘어놓고

가는 봄을 잡지도

못한단 말인가

이 몸이 아무리

아쉽다 기로

돌아서는 님이야

어이 잡으랴

 

한갖 되이 실버들

바람에 늙고

이내 몸은 시름에

혼자 여위네

가을바람에 풀벌레

슬피 울 떄에

외로운 밤에 그대도

잠못 이루리

 

4. 문장수집

 

둘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닮음의 실이 이어져 있다면 그게 몇천 몇만 가닥이든 끊어내고 싶었다.
관심도 간섭도 다 폭력 같아. 모욕 같고. 그런 것들에 노출되지 않고 안전하게, 고요하게 사는 게 내 목표야. 마지막 자존심이고, 죽기 전까지 그렇게 살고 싶어.
어제저녁 똑같이, 이 순간을 영원히 움켜쥐려는 듯 주먹을 꼭 쥐고, 절대 잊을 수 없도록 스스로에게 일러주려는 듯 작게 소리 내어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채운아.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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