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단편소설

(9)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 _ 한정현

우아한책장 2020. 5. 5.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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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문학동네 봄

 

1. 작가소개: 한정현

 

1985년 전남 구례 출생. 조선대 영어과 졸업.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석사 수료. 201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아돌프와 알버트의 언어」가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오늘의 작가상 수상. 장편소설 「줄리아나 도쿄」가 있다.

 

[당선작보기] http://www.donga.com/docs/sinchoon/2015/02_1.html

 

 

2. 등장인물

 

안나서(서화련): 세브란스 의료원 의사 서윤식의 수양딸이며 제중원의 간호원. 할머니는 여귀의 제사를 주관하던 여제였고, 어머니는 경성의 천기로 "아이에게 이름을 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출산때 과다출혈로 사망. 의사가 되고 싶어 미국으로 이주를 꿈꾸었으나, 의부 서윤식의 강요에 의해 동경의 재사와 혼인하였음. 그러나 남편과 시아버지의 사디즘적 성향으로 학대을 받다 이혼당하고 돌아와 조산소를 운영. 수성이 건넨 아메리카나로 경준과 함께  떠나려고 했으나 결국 경성 위생박람회의 표본으로 전시됨.

 

윤경준(윤경아): S언니의 로맨스라는 연애소설 작가. 위안부로 강제 징집되어 아이를 출산. 안나서와 도미행을 선택.

 

수성: 제중원의 간호보조원. 여장 남자. 양과자점에 취직했다 일본인 사업가 눈에 띄어 주점을 운영. 안나와 경준을 아메리카나로 보내고 경준의 아이를 키움.

 

윤선영: 이야기의 화자. 생물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남편의 폭력으로 이혼. 봉사활동중 만난 존과 결혼하여 미국으로 이주. 성적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메리를 응원함.

 

3. 감상

 

뒷편에 이어지는 참고문헌의 리스트를 볼때, 역사적 고증을 위한 자료조사를 저자가 얼마나 철저하게 하였는지 알 수 있었다. 과거 당선작부터 최근 장편소설 「줄리아나 도쿄」 와 함께 조선시대의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구성한 허구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결을 같이 하고 있는 것 같다.

 

화자인 선영이 그녀의 의붓딸이자 성적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메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 액자식 구성을 가지고 있다. 이야기속의 주인공인 안나서의 인생은 그녀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부터 이어져내려온 여성의 수난사이며, 그녀 역시 결국 위생박람회으 표본으로 전시되는 비운의 운명을 맞게 된다. 작가는 역사적 고증을 통해 이 시대의 성적소수자, 여성이 척박한 그들의 운명을 개척하며 이곳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것은 마지막 소설의 문장을 통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임을 강조한다.

 

한국의 옛날이야기야, 그것은

그러게 그것은 정말 옛날이야기일까.

아니면?

으리의 이야기일까?

혹시,

지금 여기?

어쩌면.

p317

 

생물학을 전공했으나 연구원이 되지 못하고 자신을 책망한 선영과 과학소녀가 나오는 연애소설을 쓴 경준을 통해서 '사건을 해결하고 나라와 공주, 소녀와 아가씨를 구하는 과학소년'의 세계에서 배제되었던  소수자에게 시선을 끊임없이 돌리고 있다. 그리고 메리와 선영의 연대를 통해 약자를 통한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끝난다.

 

이것은 그녀의 어머니가 이어온 "단지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라고 믿고 주저앉지 않았던 강한사람"이라는 신념으로 이어진 것이고  "낙관하자"는 그들이 갖는 마지막 희망의 메세지였을 것이다.

 

마징가 Z의 아수라백작, 과학소년,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선영의 이야기를 통해 이어지는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이 하나의 이야기로 응집되어 구성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마지막 수성이 경준의 아이를 키우는 것을 통해 어쩌면 선영의 아버지가 경준의 아이었을 수 있음을 암시하기도 하는데 사실 선영의 이야기와 메리와 선영의 현재를 엮는 고리가 모호하며, 마징가Z나 과학소년이라는 메세지는 주제를 부각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배치된 것 같아 소설속에서 잘 녹아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역사적 사실이 지나치게 많이 삽입되어 소설적 이야기의 몰입이 다소 떨어졌던것 같기도 하다. 다만 조선시대의 성석 소수자라는 다소 생소한 주제를 소설에 도입한 점은 흥미로웠다.

 

「줄리아나 도쿄」가 굉장한 호평을 받은 것으로 아는데, 작가의 다른 작품을 같이 읽어봐야 겠다.

 

 

4. 문장수집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 전체를 사랑하는 것이지, 그 사람이 이렇게 돼주었으면 하는 것은 아니야." 네, 「안나 카레니나」의 문장이에요.

 

안나는 경준을 보며 심각한 게 아닌 진지한 사람이란 얼마나 편안한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단지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라고 믿고 주저앉지 않았던 강한 사람

 

"낙관하자"

 

"공기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존재하고, 입김은 그걸 알게 해주잖아요."

 

손과 발을 청결히 할것, 활기차게 생활할 것, 환자에게 친절할 것, 간호원이라는 인식을 가질 것, 협동할 것, 환자의 험담을 하지 말 것, 이름을 기억할 것, 조선 여성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질 것, 그리고 낙관할 것.

 

그러나 하나의 물음이나 대답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는 게 또한 세상인 까닭에 어떤 것은 그토록 변하지 않아서 안심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