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단편소설

(8) 눈과 호랑이와 고양이가 _ 한유주

우아한책장 2020. 5. 2.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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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문학동네 봄

 

1. 작가소개: 한유주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미학과 대학원을 수료했다. 2003년 단편 『달로』로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2009년 단편 『막』으로 제43회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했다. 시, 희곡과는 다른 소설만의 고유한 장르성이 어떻게 획득되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 소설집으로 『달로』(2006), 『얼음의 책』(2009),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2011) 등이 있다.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에서 세계문학강독을,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에서 글쓰기를 강의하고 있으며, 텍스트의 경계를 실험하는 문학동인 ‘루’ 활동을 하고 있다. 『지속의 순간들』『작가가 작가에게』, 『교도소 도서관』, 『눈 여행자』 등을 번역하였다.

 

2. 줄거리

 

지난밤영동 고속도로 평창 휴게소에서 서울방면으로 7.2키로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트럭에 받혀 사마한 그(원석희)의 영혼은 그가 거주하는 마포구 합정동 빌라로 돌아와 고양이에게 사료를 챙겨주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눈이 내리는 이 순간 빌라에 거주하는 다양한 거주자 들의 모습이 고양이와 호랑이의 이미지와 함께 펼쳐진다.

 

3. 감상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타인으로 존재하는 외로운 사람들의 세계를 쓸쓸하지만 아름답게 묘사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이 하찮아보이지만 자신의 존재를 지켜나가기 위한 고군분투 하고 있다는 것도. 그렇기에 소설내에서 반복되는 표현 " 지킬 수 있다면 지켜야 한다 지킬 수 없더라도 지켜야 한다"는 말은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하는 다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설원에서 사냥을 기다리는 호랑이의 모습이 이런 존재의 쓸쓸함과 생존의 모습과 연상되어 그려졌다. 눈속을 홀로 걷는 고양이는 고독하게 살아가는 독립적이고 강인한 생명의 느낌, 그러나 누군가 도움(사료)을 기다리는 존재로의 연약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스쳐지나가고 우리들의 프레임(페이지)속으로 들어왔다 사라져 버리곤 한다.

 

"그의 존재는 잃어버린 장갑 한짝들의 세계와 이웃한 심연 속으로 영원히 사라졌다"는 말처럼 소설속의 주인공들 역시 우리들의 이야기속으로 등장하고 사라지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이런 타인들의 이야기가 벽하나 사이로 층 사이로 다르게 펼쳐지도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고 마치 전지적 시점에서 그들의 삶을 내려다보는 방식도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빌라라는 한정된 공간과 눈과 겨울이라는시간 공감각적인 심상이 잘 살아 있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투명하고 절제된 문장들이 소설적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는 생각이 든다.

 

한유주 작가의 소설은 처음인데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었다.

 

4. 문장수집

 

그의 존재는 잃어버린 장갑 한 짝들의 세계와 이웃한 심연 속으로 영원히 사라졌다.

 

그의 마른 몸집이 내피와 분노와 다가올 죽음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기를.

 

지킬 수 있다면 지켜야 한다. 지킬 수 없더라도 지켜야 한다.

 

시베리아 설원의 호랑이들도 내리는 눈을 지켜보고 있었다. 눈이 내리면서 풍경은 하얗게 지워지는데..... 어찌된일이니 모든 이들이 강렬하게, 더없이 강렬하게 살아 있었다. 심연 속에서도 살아 있기를 멈추지 않고 있었다. 죽은 자들조차도 살아 있었다.

 

그로부터 구 년 후, 눈이 내리기 때문인지, 잔뜩 흐려지는 풍경 속에서, 경비원은 자신이 살아 있음을, 그 무엇보다도 강렬하게 살아 있음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