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단편소설

(7) 유진 _최진영

우아한책장 2020. 4. 28.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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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2020 봄

 

1. 작가소개: 최진영

박범신, 공지영, 황현산 등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제15회 한겨레문학상에 당선된 작가. 1981년 눈이 많이 내리던 날 태어났다. 유년기에 이사를 자주 다녀서 어딜 가도 내 집, 내 고향 같다. 소설가가 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소설은 쓰고 싶었다. 낮엔 일하고 밤엔 글 쓰다가 2006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등단 2년 후부터 낮엔 글 쓰고 밤엔 푹 잤다. 다음 생엔 적은 돈으로도 우주여행이 가능한 시대 혹은 행성에 태어나고 싶다. 은근히 열정적으로, 다음 생의 우주를 치밀하게 준비 중이다.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끝나지 않는 노래』,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구의 증명』 『해가 지는 곳으로』, 『이제야 언니에게』, 『비상문』, 『이제야 언니에게』, 『겨울방학』, 소설집 『팽이』가 있다. 신동엽문학상,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2. 줄거리

 

생일을 맞이하여 공미로부터 연락을 받은 나는 오래전 잊고 지내던 '유진'의 부고 소식을 들으며 회상에 잠긴다. 무기력한 고등학교 시절을 마치고 낯선 도시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한 나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며 지낸다. 그러던 중 2학년 무렵 '베네치아'라는 음식점의 아르바이트를 구하게 되고, 매니저인 유진을 만나게 된다. 자신의 일에 철저하고 기품이 있길 원했던 유진에게 나는 과거 '무영'이라는 고등학교 친구에 대해 털어놓게 된다. 이후 회식 후 찾아갔던 유진의 집 방문 후 아르바이트 생들의 분위기는 변하게 되고 견디지 못한 나는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타인에 대한 신뢰와 자신에 대한 책으로 남은 대학 시절을 철저히 혼자 보내게 된다. 이나와 겨울을 보내는 나는 과거 '어른'이었던 유진의 행동을 조카 이나를 통해 반추하며 그녀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3. 감상

 

현재-과거회상 -현재로 이어지는 액자식 회상구조 소설.  자신의 이름이 같았던 '유진'을 20여년이 흐른 후 그녀와 같은 나이가 되어 과거를 되돌아보게 된다. 보여지는 것, 그것을 둘러싼 분위기만으로 판단하고 함부로 추측하고 과장하는 학교라는 작은사회는 화자에게는 속할 수도 속하고 싶지도 않은 곳이었다. 과거 자신을 친밀하고 솔직하게 대했던 '무영'을 그런 사회적인 압력(분위기)떄문에 멀리했던 나는 '유진'역시 그런 상황에 처했을때 또다시 피하고 만다.

 

소설의 마지막에 아나를 통해 '어른'이라는 것은 무엇이고 그때 그런 상황에서 어른이었던 '유진'은 왜 이런 상황을 바로잡지 않았는지에 대해 생각한다고 소설을 끝맺는데, 조카 '이나'는 철저하게 이런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로 삽입된 것이어서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최초 소설은 타인에 대해 '함부로 추측하고 과장'하는 타인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후에 '어른'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돌아보게 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며 이 소설에서는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었는지 모호해졌다. 사건들과 결말이 잘 연결이 안되는 느낌.

 

이에 더해 화자의 학창시절을 묘사하는 부분은 흡사 '하루키' 소설의 허무주의 분위기와 유사하게 느껴져 개인적으로는 다소 촌스러운 느낌이 들었고,  왜 소설에 각주를 삽입했는지 궁금했다. 극적인 효과를 주는것 같지도 않고, 각주의 형식으로 제공할만한 내용인가에 대해서 퀘스천마크. 

 

4. 문장수집

 

밤이 깊어 거실이 조용해지면 주방으로 나가 뜨거운 우유에 믹스커피 두 봉지를 타서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달고 느끼한 커피를 마시며 라디오를 듣고 낙서를 했다. 어둡고 비관적이고 끈적끈적하다가 끝내 횃불처럼 타오르는 낙서였다. 우울감과 무기력은 내 몸을 통째로 받아들이는 안락한 소파였다. 우울감은 팔이 여럿인 시바 신처럼 쉬지 않고 나를 쓰다듬었다. 나는 매일 파괴되었으나 창조되었고 창조된 나는 파괴되기 전의 나와 다르지 않았다. 무의미하다는 생각뿐이었다. 기나긴 겨울이었다.

 

나는 안다고. 내게 다정하고 상냥한 친구들이 언제든 적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는 걸. 그건 충격이나 배신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 만큼 흔한 일이라고. 나는 사람 안 믿는다고. 분위기를 믿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