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단편소설

(1) 우리는 왜 얼마동안 어디에 - 은희경

우아한책장 2020. 4. 12.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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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 2020 봄

 

 

 

1. 작가소개 : 은희경

 

 1959년 전라북도 고창 출생.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타인에게 말걸기」,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않는다」, 「상속」, 「아름다움은 나를 멸시한다」, 「중국식 룰렛」, 「새의 선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그것은 꿈이었을까」,「마이너리그」, 「비밀과 거짓말」, 「소년을 위로해줘」, 「태연한 인생」, 「빛의 과거」 등.

 

 

2. 줄거리

 

대학졸업 후 잡지사에서 2년간 계약직 직원으로 일하던 승아는 계약종료를 얼마 앞둔 어느날 뉴욕에서 자리 잡은 소꿉친구 민영의 SNS 게시물을 보고 적금을깨 충동적으로 민영이 있는 도시로 떠난다. 하지만 자신에게 심드렁한 민영의 모습과 자신의 환상과는 전혀 다른 도시를 보며 자신이 밀려났다고 생각한 승아는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가까운 관계라고 믿었던 마이크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멀어져 심난한 민영과 승아는 계속해 엇갈리게 된다.

 

3. 감상

 

그들의 사정. 승아와 민영이라는 두 관점에서의 사건을 서술하며, 그들은 다른사정을 가지고 한 공간에서 갈등하지만 그것이 결국은 주변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결국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채로 겉도는 자신에 대한 분노와 상실의  다른 모습임을 알게 된다.

 

성실성과 적응력으로 대변되는 승아, 도전정신과 창의력으로 보여지던 민영 모두 '일궈 놓은 세계'로 부터 거부당한 기분이 들었고 마지막 맨해튼을 바라보며 샌드위치를 먹으며 나눈 대화에서 여전히 그들은  '우리는 얼마동안 왜 어디에'서 이 시간을 견뎌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럴때면 말야, 왜 얼마 동안 어디에를 생각해봐. 거기에 대답만 잘하면 문을 통과할 수 있어. "

 

그들은 막연히 그들 앞에 놓인 하나의 관문인 '문'을 통과하면 닿을 수 있는 공간이라고 위로하지만 결국 속하지 못할 맨해튼의 아름다운 야경은 멀리서만 바라봐야 한눈에 볼 수 있는 그저 멀리서 빛나는 아름도시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비록  '그저 끔찍한 더위, 가로막힌 창문들, 저녁 거리에 쌓여 있는 검은 쓰레기 봉투의 냄새, 시간을 지키지않은 우편물'로 뒤범벅된 무질서하고 실망스러운 곳일지라도 말이다.

 

중심부로서의공간 맨해튼과 민영이 얻은 자취방의 공간적 대비와 승아와 민영의 대조적이지만 은밀한 속사정에 대한 서술도 몰입있게 읽을 수 있었다. 특희 엄마와 민영의 옷가게 에피소드는 정말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4. 본문인용

 

떠나오기 전 그녀는 주변의 모든 것이  자신을 밀어낸다고 생각했다.

 

너무 흔하가고 일상적이 말이었지만 그때의 승아에게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승인과 호의가 담긴 유의미한 단어로 여겨졌다. 눈앞에서 문이 닫히더라도 그게 끝이 아니고 어딘가에 환영이라고 적힌 다른 문이 있다.

 

마이크는 무엇이든 원하는 걸 갖기까지 신중하고 가진 다음부터는 소중히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그 안은 소름 끼칠 만큼 서늘하고 조용하고 좋은 냄새를 풍겼다.

 

민영과 엄마는 둘 다 자기가 일궈놓은 세계로부터 거부당했고 삶이 임시 거쳐였고 돌아갈 곳은 없었다. 엄마에게는 남아 있는 기회마저 그다지 없었다. 일생을 두고 모두를 준 존재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데 더이상 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만큼 그녀를 무력하게 만드는 건 없었을 것이다.

 

그것을 영원히 간직하라는 말만큼이나 부담스러웠으며 또 궁금하지도 않았다. 친하다고 해서 비슷해질 필요는 없었다.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미소를 보내고 손을 흔들면 되었다. 민영은 그것을 납득시키면서 유지해야 하는 관계들이 피곤했고. 적당한 기만으로 덮어두지 못하는 자신 역시 지겨웠다.

 

자기들끼리 선을 그어놓고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보이려는 사람들이 좀 있거든. 그건 어디 살든 마찬가지 아냐? 승아가 대꾸했다. 다음 순간 승아의 얼굴에도 웃음이 떠올랐다. 그럴때면 말야, 왜 얼마 동안 어디에를 생각해봐. 거기에 대답만 잘하면 문을 통과할 수 있어.

 

맨해튼, 여기에서 보아야 한눈에 볼 수 있어. 가까이 가면 너무 크니까. 승아는 머리속으로 이 도시에서 남은 시간을 헤아렸다. 이틀은 더 맨해튼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