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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국립현대미술관 히토 슈타이얼 - 데이터의 바다

우아한책장 2022. 8. 9. 11:47

청와대 관람을 마치고 BK와 함께 오랫만에 국립현대미술관을 방문했다. 현재는 히토 슈타이얼- 데이터의바다가 열리고 있었다.

 

 

히토 슈타이얼(1966, 독일)은 디지털 기술, 글로벌 자본주의, 팬데믹 상황과 연관된 오늘날 가장 첨예한 사회, 문화적 현상을 영상 작업과 저술 활동을 통해 심도 있게 탐구해오고 있는 미디어 작가이다. 또한 예술, 철학, 정치 영역을 넘나들며 미디어, 이미지, 기술에 관한 흥미로운 논점을 던져주는 시각예술가이자 영화감독, 뛰어난 비평가이자 저술가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현재 『이플럭스』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 학술지 및 미술 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전시는 총 5개의 섹션으로 나누어져있다. 

 

- 데이터의 바다

- 안보여주기

- 기술, 전쟁 그리고 미술관

- 유동성 주식회사

- 기록과 픽션

 

1. 데이터의 바다 

 

‹깨진 창문들의 도시›

이 작품은 전시공간의 양쪽 끝에 위치한 두 개의 영상 설치작품과 평면 오브제, 그리고 벽에 부착된 문구들로 구성돼 있다.
두 영상 설치작품은, ‘깨진 창문들’과 ‘깨지지 않은 창문들’이라는 제목으로 서로 대구를 이룬다.

우선, ‘깨진 창문들’인공지능과 컴퓨터 알고리즘이 어떻게 새로운 보안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활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영상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지어진 런던의 비행기 격납고에서 오디오 분석 기술자들이 창문 깨는 소리를 녹음해 수많은 소리의 견본을 만든다. 그런 다음, 컴퓨터로 하여금 이 소리의 코드를 모델링해 학습하게 하는데 목적은 침입의 소리, 즉 유리창 깨는 소리를 식별하기 위한 시스템을 컴퓨터 인공지능에 기록하고 이 기록을 홈 보안 시스템에 적용하기 위한 것이다.

반대편에 설치된 작품, ‘깨지지 않은 창문들’ ‘깨진 창문 이론’이라는 사회 심리학 이론과 연관되는데 이 이론에서는 창문이 깨진 상태로 방치되면,이 깨진 창문을 중심으로 다른 창문들까지 깨질 수 있고, 그에 따라 여러 형태의 사회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작품에는 미국 뉴저지에 있는 캠던 비영리 기관의 멤버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나무 패널에 창문 모양을 그려 넣어 깨진 창문의 이미지를 가림으로써 범죄의 가능성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미션완료: 벨란시지>

 

수직으로 설치된 세 개의 스크린 위에서 히토 슈타이얼과 그의 동료 예술가들인 조르기 가고 가고시체, 밀로쉬 트라킬로비치가 비디오와 강연 형식을 결합한 렉처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지난 30여 년 동안 유럽의 사회와 정치, 문화의 변동을 고찰한다.


이 퍼포먼스의 중심에 놓인 것은, ‘발렌시아가’라는 명품 패션 브랜드인데 왜 하필이면 ‘발렌시아가’일까?

그 이유는, 발렌시아가가 국가 사회주의 붕괴 이후 성장한 자유시장 이데올로기 속에서, 동유럽과 서유럽 정치권과 문화계를 넘나드는 패션 데이터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발렌시아가의 수석 디자이너인 뎀나 바잘리아는 옛 소련의 연방이었던 조지아 난민 출신으로 동구권의 붕괴 이후 서유럽으로 넘어왔다. 그는 발렌시아가의 디자이너가 되기 전 베트멍이라는 패션 브랜드를 만들었다. 이 브랜드는 인터넷 밈을 미끼로 쓰는 전략을 취한다. 소셜 네트워크에 연결된 수많은 유저가 자발적으로 밈을 생산하도록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밈을 활용해 패션 디자인을 트렌드로 만드는 마케팅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베트멍과 발렌시아가가 채택한 이런 방식을 슈타이얼은 ‘벨란시지’, 즉 ‘발렌시아가 방식’이라고 이름 짓는다. 데이터 분석 알고리즘을 활용해 SNS 유저들의 각종 활동과 선호도를 모으고 캐내고 분석함으로써 만들어지는 이 전략은 패션을 넘어 정치와 대중문화, 경제 영역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소셜심>

 

2년이 넘도록 지속된 팬데믹 기간동안,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가상공간은 현실 세계를 더욱 적극적으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소셜심›은 이런 혼란스러운 사회 상황 속에서 예술 창작의 조건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 시대 미술관의 위상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탐구하는 5채널 영상 작품이다.


 4개의 영상 위에는,쉬지 않고 춤을 추는 경찰 아바타들이 등장한다. 2020년 팬데믹이 시작된 뒤, 독일과 미국에서는 사회적 통제에 반발하는 대중 시위가 일어났는데 영상에 등장하는 경찰은 바로 이런 시위를 진압하려는 독일과 미국의 경찰들이다. 시위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자와 부상자, 실종자의 수, 최루탄 가스의 양 같은 데이터들이 오르고 내릴 때마다경찰들이 추는 춤의 모션과 안무가 바뀌는 것이다. 따라서 이 경찰 아바타들의 춤은 데이터 기반의 시뮬레이션 영상이 만들어낸 일종의 안무인데 달리 말하면, 인간의 신체를 움직이는 것은 데이터와 시뮬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방에는 싱글채널 영상 작품이 전시되는데 이 영상에서는, ‹살바도르 문디›라는 도난된 미술 작품을 찾는 태스크포스가 등장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을 되찾기 위해 이들은 가상의 전시공간으로 들어가게 되고, 신경망 네트워크와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미술들을 만나게 된다. 가상현실을 통해서만 입장할 수 있는 이 미술관을 통해 슈타이얼은 팬데믹이 앞당긴 디지털 세상의 미술관에 대해 예술가적 논평을 제시하고 있다.

<태양의 공장> 

‹태양의 공장›은 현실 세계의 육체노동이 데이터 노동으로 치환되는 데이터 사회의 세계상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제목, ‹태양의 공장›은 영상의 주인공이자 내레이터인 율리아가 모션캡쳐 스튜디오에서 제작하고 있는 게임의 이름인데 영상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이 스튜디오의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춤이라는 노동을 실행하고, 이들의 춤 동작은 입고 있는 모션캡쳐 수트에 부착된 센서를 통해 인공 태양광으로 변환된다.

슈타이얼은 유튜브 댄스 영상과 드론의 감시 영상, 비디오게임 캐릭터와 다큐멘터리 필름, 페이크 뉴스와 춤추는 아바타 등
실제와 픽션을 뒤섞으며 이 초현실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영상 속의 대사는 계속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게임이 아니다. 이것은 현실이다.’
 
 

<야성적 충동>

 

‹야성적 충동›은 총 4채널 비디오 설치로 구성돼 있다.  내러티브 비디오는 양치기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3채널 영상은 특수 센서가 감지하는 식물 환경의 변화 상태를 기반으로 한다. 이런 정보는 라이브 인터랙티브 시뮬레이션을 통해 기록돼 영상으로 전환된다.

한 TV 프로그램 제작팀이 양치기에 대한 리얼리티 TV 쇼를 제작하기 위해 스페인의 작은 산골 마을에 들어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TV 쇼는 팬데믹 때문에 이내 중단되고 마는데 그 대안으로 프로그램 제작자들은 “크립토 콜로세움”이라 불리는 동물 전투 메타버스를 제작한다. 그리고 현지 양치기들은 리얼리티 TV 쇼가 NFT 경쟁으로 확대되는 이런 상황에 맞서 싸우기 시작하죠. 그들은 구석기 벽화가 그려진 신비로운 동굴을 중심으로 양치기들만이 가진 힘을 불러온다. 바로, 다른 종들과의 사회적이고 생물학적인 상호교류의 힘이다.

이 작품의 제목은 영국의 경제학자 존 매이너드 케인스가 1936년에 언급한 ‘야성적 충동’이라는 용어와 연관이 있는데 ‘야성적 충동’이란 사람들의 감정이나 탐욕, 야망, 두려움으로 인해 시장이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 미친 듯이 날뛰는 현상을 일컫는다. 작가는 이 신작에서 케인스를 통해 비트코인, NFT 등과 연동된 오늘날의 야생 자본주의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것이 미래다>

 

이 작품은, 싱글 채널 영상 ‹이것이 미래다›LED 스크린이 장착된 구조물, ‹파워 플랜츠›로 이뤄져 있다.

영상에서는 신경 네트워크가 내러티브를 담당하고 있는데 이 작품은 헤자라는 쿠르드족 여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미래 예측 프로그램에 의해 감옥으로 간 헤자는 감옥 앞마당에 날리던 씨앗을 붙잡아 종이 위에서 꽃의 싹을 틔우지만,
교도관들은 꽃을 발견해 모두 없애버리고 만다. 하지만 신경 네트워크는 꽃을 미래로 보내면 꽃을 키울 수 있다고 예측하고
그 예측에 따라, 헤자는 미래 정원에 꽃을 숨긴 뒤,신경 네트워크에 의해 재생된 꽃과 나무를 다시 찾아내게 된다. 이 미래 정원에 피어난 식물들은 SNS 중독으로 뇌가 병든 사람을 치유하거나, 혐오와 선동에 둔감하게 하거나, 독재자를 독살하기도 하는 등, 마술적인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또한 미래를 예측하려 애쓰면서도 현재를 바라보지 못하는 인공지능의 우둔함을 꼬집고, 교통상황과 신용등급뿐 아니라 반란, 자살률, 수명까지 예견하려는 예측 알고리즘의 신뢰성에 회의를 보이기도 한다.

‹파워 플랜츠›는 인공지능과 예측 알고리즘, 미래 예견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만화경 같은 컬러풀한 식물 이미지를 연속적으로 재생해내는 구조물이다. 비디오의 다음 프레임을 계산해 미래를 예측하도록 프로그램된 덕분에,화려한 디지털 식물들을 계속해서 꽃피울 수 있게 된다. 

 

2. 안보여주기- 디지털 시각성

 

 ‹안 보여주기: 빌어먹게 유익하고 교육적인 .MOV 파일›

영화나 드라마 시리즈를 보면,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세상의 눈을 피해 완벽하게 사라지려는 누명 쓴 주인공이나 범죄자를 종종 등장하곤 하는데 그런데 이런 일이 현실에서 가능할까? 도처에 감시 카메라가 널려 있고, 휴대폰 신호나 카드 사용 내역 같은데이터 수집을 통해 실시간으로 위치 추적이 가능하다. 또한, 구글맵, 인공위성, 감시 카메라와 드론, 항공지도 등의 장치를 통해세상의 모습이 위에서 아래로 조망되고 있는 시대에 세상과 인간을 인식하는 방법은 이전과 비교해 어떻게 달라졌을까?

히토 슈타이얼은 이 작품에서, 5장으로 구성된 게릴라 매뉴얼의 형식을 빌려 세상에서 ‘안 보일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며 이런 질문을 던진다. 작가가 제시하는 다섯 가지 방법은

 

- 카메라에 안 보이게 하는 방법
- 시야에서 안 보이게 하는 방법

- 이미지가 되는 방법,
- 사라짐으로써 안 보이게 되는 방법

- 이미지로 만들어진 세계에 병합됨으로써 안보이게 되는 방법


영국의 전설적인 코미디 시리즈에서 제목을 따온 이 작품 전체에는 디지털 시각 체제를 둘러싼 날카로운 통찰과 유머가 공존하고 있다.

 

3. 기술, 전쟁 그리고 미술관/- 유동성 주식회사/ 기록과 픽션